[윤상길의 행복글방] ‘어덜트 시니어’가 뛴다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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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어덜트 시니어’가 뛴다
  • 입력 : 2020. 07.14(화) 14:51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패션산업 분야에 어덜트 시니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패션 소비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시니어 패셔니스타 콘테스트’ 참가자들의 모습이다. / 뉴시스
‘어덜트 시니어(Adult Senior)’란 영어 명사 조합의 신조어가 여러 분야에서 제법 자주 쓰이며 주목을 받는다. 생물학적으로는 18살 이상의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와 65살 이상의 ‘노인’을 뜻하는 ‘시니어’가 합쳐진 말이다. 단어 자체만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피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떤 단어이든, 특히 신조어는 감춰지거나 은유적으로 쓰일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요즘 쓰이는 ‘어덜트 시니어’는 ‘자신만만한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스스로 ‘어덜트 시니어’라고 믿는 중장년층이 증가하고,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이유는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하던 단절의 시대가 ‘우리는 우리’라는 소통의 시대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중장년 모임에서 래퍼 지코의 ‘아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춤 동작을 선보이고, 젊은이들이 노래방에서 옛 노래 하나쯤은 ‘18번 노래’로 부르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비대면’이 불러온 변화이다.

‘어덜트 시니어’가 자주 등장하는 분야는 패션산업 분야이다. 이 분야에서 처음 등장했고, 실제로 그 영향력을 수치로 입증하고 있다. 50~60대 중장년층의 온라인 패션 소비가 코로나를 계기로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 1분기 일상용 소비재를 구매한 새로운 온라인 고객은 전년대비 19.6% 증가했다. 이 가운데 50대가 24.9%, 60대는 29.2%로 50~60대가 절반을 넘었다. 이를 두고 패션업계는 ‘어덜트 시니어’가 급증했다고 설명한다.

세계적 기업 경영 컨설팅 전문 기관인 맥킨지의 한국지사는 최근 “코로나 이후 50대 이상 이커머스 사용률이 7%P 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가파른 증가 폭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실제 50대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국내 내셔널 브랜드들도 온라인 판매가 늘고 있다. 주요 어덜트 패션 업체의 자사몰 기준 회원과 매출이 증가 추세다.

기성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트로트 장르에 젊은 가수들이 참여하면서 붐이 일어났다. 이로써 세대 간 장벽을 없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로트를 통해 대중음악에 연령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 뉴시스

세정몰의 경우 상반기 기준 지난해 동 기간 대비 40~60대 이상 신규 회원 비중이 6% 늘어나 73%를 차지한다. 형지몰도 40~60대 어덜트 및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2% 상승했다. 이처럼 이제까지 대면에 의존했던 시니어의 구매 패턴이 비대면으로 변화했다. 젊은이 못지않게 시니어들의 온라인 참여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어덜트 시니어’들의 쇼핑몰 이용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시니어 패션모델도 각광받는 직업군으로 주목받는다. 시니어모델협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선발대회가 수시로 열리고, 시니어 패션모델을 발굴 육성하는 교육기관과 기획사도 여럿 창업됐다. 패션 콘텐츠를 운영하는 한 기획사의 대표는 “100세 시대에 50~60대는 청춘”이라며 “시니어 패션모델 수요가 올해 들어 전년대비 200%이상 급증했다”고 전한다.

‘어덜트 시니어’는 이제 ‘기피 세대’가 아니라 ‘함께 걷는 세대’라는 인식이 젊은 층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는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최근 만15세~ 59세 남녀 1200명을 Z세대(만15~24세), 밀레니얼 세대(만25~39세), X세대(만40~50세), 86세대(만51~59세)로 구분해 세대별 자아, 관계, 사회, 국가, 세계, 삶에 대한 인식 및 가치관 비교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Z세대의 4명 중 1명이 86세대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 간 차이에 대해 Z세대는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큰 변화를 보였다.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비대면 소통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세대보다 온라인 관계에 열려 있는 Z세대의 모습이 이 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졌다. 세대별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의 유형을 물은 결과, Z세대 22.3%가 나이와 관계없이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을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비대면 소통이 친구의 세대 구분을 허물은 셈이다.

60~70대 연극인들이 만든 ‘동행’은 고령사회에 힘겹게 적응하는 소시민들의 노년기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객석의 90%가 20~30대 관객이 차지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 공연 포스터
Z세대의 응원 속에 50~60대가 ‘자신만만한 기성세대’로 활약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트로트 음악이다”란 견해를 내놓았다. 스타다큐미디어 공동대표인 박준식 평론가는 “기성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트로트 장르에 젊은 가수들이 참여하면서 트로트붐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진단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열기는 실제로 방송과 대중음악 시장에 ‘혁명’을 일으켰다. 벤치마킹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부정적 의미의 장르 파괴가 아니라 장르 융합의 발전적 모습으로 세대 간 장벽을 없앴다는 평가다.

최근 종영된 Mnet ‘보이스코리아’에서는 본선 진출자 4명 모두가 선배들의 노래를 불렀다. 우승자 김지현은 고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박다은은 고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을, 김민경은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전철민은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을 선곡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돌그룹 등 동시대 가수의 노래를 선곡했을 터인데, 그들은 달랐다. 이미 고인이 된, 또 중견가수의 곡을 불렀다.

지난 10일 방송이 시작된 MBN ‘보이스트롯’에는 16살 중학생 가수 황민우에서 82세 배우 전원주까지 연령 불문 스타들이 한 무대에서 트로트 경연을 펼치고 있다. MBC ‘최애 엔터테인먼트’에는 아스트로의 MJ, 스트레이키즈의 아이엔, 위인더존의 주안, 동키즈의 원대와 종형 등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출연해 장윤정의 트로트 키즈가 되기 위해 불꽃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이고, 트로트를 통해 대중음악계가 연령 구분 없이 융합되고 있다.

대학로 연극계의 ‘어덜트 시니어’ 작품도 특별하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공연이 고전하고 있는데,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연극이 있다. 60~70대 연극인들이 만든 ‘동행’이란 작품이다. 고령사회에 힘겹게 적응하는 소시민들의 노년기를 다룬 연극이다.

연극 ‘동행’은 올해 82살이 된 윤대성(서울예대 명예교수) 원로 극작가의 작품이다. 이를 가수 장나라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주호성(71) 배우가 예술감독을 맡았고, 양재성(76)과 하미혜(67)가 남녀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노인들이 풀어낸 노인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젊은 연극’을 표방한 대학로 연극 환경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90%를 20~30대 관객이 차지하고 있다. ‘노인 연극’에 ‘젊은 관객’이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대중문화를 통한 세대 간 소통으로 볼 수 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TV드라마에서 40~50대 이야기가 시청자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도 ‘자신만만한 시니어’ 열풍과 연관이 있다. 지난 3~5월에는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더니 7월 들어 시작된 JTBC의 ‘우아한 친구들’이 중년 소재 드라마 열기를 이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20년 지기의 이야기를 다룬 40대 드라마로 젊은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미래의 또 다른 모습을 이들 드라마에서 찾으며 소통하고 있다.

‘어덜트 시니어’가 주목받는 현상은 ‘세대 단절’이 ‘세대 소통’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대중문화가 이뤄낸 긍정적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진 것은 우리 모두가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모와 자녀, 선배와 후배, 선생과 제자 등의 인간관계는 세대로 구분되지 않는 ‘불가역적인 시간의 구분’일 뿐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모든 인간관계는 소통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소통을 함으로 곁에 머무르거나 머무르지 않을 선택권이 생긴다. 그렇게 맺어지는 것이 인연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줄리의 법칙’처럼 믿음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시작하자. 슈바이처 박사는 그래서 “성공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성공으로 가는 열쇠다”고 갈파했다. ‘어덜트 시니어’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