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잔치, 잔치 벌였네, 트로트 잔치 벌였네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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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잔치, 잔치 벌였네, 트로트 잔치 벌였네
  • 입력 : 2020. 12.22(화) 17:03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TV조선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 최종회에서 역대 종편 최고 시청률을 경신할 만큼 큰 인기를 끌자 지상파 방송들도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었다. / 쇼플레이
1966년 당시 최고의 남성그룹 블루벨스(박일호, 현양, 서양훈, 김천악)가 부른 ‘즐거운 잔치날’이란 노래가 있다. 밝은 가요 전문가였던 고 손석우 작가가 작곡하고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는 “잔치, 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 / 복순이가 시집가고 삼돌이가 장가가요”라고 시작된다. 포크가요로 발표된 ‘즐거운 잔치날’은 요즘 방송사 트로트 잔치에 안성맞춤 주제가이다.

2020년 가요계를 두 단어로 정리하면 ‘방탄소년단’, 그리고 ‘트로트’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송가인이 트로트의 ‘늦깎이 요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올해는 임영웅, 영탁, 이찬원 등 젊은 남자 스타들이 대거 배출됐다. 트로트계가 이처럼 단기간에 많은 스타를 배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방송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 트롯’과 ‘내일의 미스터 트롯’의 인기가 결정적이었다.

‘따라 하기’는 우리나라 방송가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다. 종사자들의 안전판이기도 하다. 게다가 높은 시청률까지 확인된 상태다. 실제로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경우 최종회 시청률 34.8%를 기록하며 역대 종편 시청률 기록을 경신했다. 객관적 수치가 입증하는 이 아이템을 어느 방송이 외면할까. 종편은 물론 지상파 방송까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었다. 2020년 마지막까지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은 트로트 오디션으로 잔치상을 차려내고 있다.

소위 방송 3사로 불리는 지상파 방송 중에서는 SBS가 가장 먼저 트로트 잔치상을 차렸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이 종영되기 직전(3월 12일)인 지난 3월 4일 ‘트롯신이 떴다’로 트로트 열기를 이어받았다. 유명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한 ‘트롯신이 떴다’의 시작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국내에 트로트 붐이 일자 그 열기를 K팝처럼 K트로트로 세계화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SBS ‘트롯신이 떳다’는 트로트의 세계화를 꿈꾸며 시작했으나 ‘Last Chance’라는 이름을 덧붙여 무명가수 오디션으로 포맷에 변화를 줬다. 오디션은 성공적이었다. / SBS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국 공연이 여의치 않아 콘텐츠 수정이 불가피했다. 제작진은 처음 얼마간 랜선 공연으로 포맷에 변화를 주다가 지난 9월 9일 ‘트롯신이 떴다 – Last Chance’란 이름을 달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변신했다. ‘무명가수에게 이름을 찾아주자’며 시작된 이 무명가수 오디션은 성공적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유명 가수들은 무명 가수의 멘토로 자리를 잡았다. K트로트의 세계화 꿈은 잠시 접었다.

‘라스트찬스’의 선전에 맞서 MBC는 지난 10월 23일 ‘트로트의 민족’이란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트로트 오디션 잔치에 숟가락을 얹었다. 트로트 열기가 뜨겁다 한들 ‘민족’까지 들먹인다는 건 지나치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MBC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민족의 트로트화’를 시도하는 듯했다.

가장 늦게 공영방송인 KBS까지 트로트 잔치상을 차렸다. 이달 2일 2TV 채널로 송출을 시작한 ‘트롯 전국체전’이다. 이 프로그램 제목 역시 ‘국민 동원령’ 냄새를 풍긴다. MBC ‘트로트의 민족’이 전국 시도 대표를 선정해 경연을 펼치는 방식이라면 KBS2 ‘트롯 전국체전’은 출연자가 대표 지역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어떻든 시청자가 출신지 별로 편을 가르도록 암암리에 지역색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KBS2 ‘트롯 전국체전’은 프로그램 소개의 글에서 “팔도의 대표 가수에서 글로벌 K-트로트의 주역이 될 새 얼굴을 찾기 위한 KBS의 대형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라고 적고 있다. 팔도가 하나 되어 K트로트의 주역이 되자는 취지다. 그래서일까.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글로벌 팀을 만들어 출연시키고 있다.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을 출연시키고 있는데, 여기에 탈북민을 포함하는 형식은 올바르지 않은 ‘편 가르기’란 지적도 적지 않다.

KBS2 ‘트롯 전국체전’은 전국 팔도 대표를 선정해 경연을 펼치는 방식의 오디션이다. 취지와 달리 지역색이 강조되면서 구설에 휘말렸지만 트로트 열풍에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 포켓돌스튜디오

2020년 트로트 잔치에 전년도 주역인 TV조선의 ‘미스 트롯’이 시즌 2로 돌아와 트로트 잔치상의 주빈으로 나타났다. ‘미스 트롯 2’는 이달 17일 매머드 출연진을 과시하며 첫 방송을 내보냈다. 시즌 1에 비교하면 심사위원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 특별히 달라진 콘텐츠는 보이지 않는다.

트로트 열풍과 관련해 “이 현상이 국민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프로그램 제목만 다를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모든 프로그램이 ‘신개념 오디션’을 내세우는데, ‘신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변별력을 지니지 못하면서 “트로트 음악에 질렸다”는 시청자도 늘고 있다. 시청자를 질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수명이 짧다.

부정적 견해에 맞서 “현재의 트로트 열기를 우리 전통음악의 토착화로 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왜색(倭色)풍을 벗겨내고 우리만의 음악으로 토착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뽕짝’의 이미지를 벗어야만 K트로트의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견해다.

음악이론으로 트로트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은 학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왜색의 문제는 한국 트로트 역사에서 가장 민감한 논란의 대상이다. 왜색이란 표현 자체에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증오심과 적개심, 그런데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에 느끼는 호기심 등이 뒤섞인 콤플렉스가 뒤섞인 감정이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반면 긍정 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은 지금의 트로트 열풍이 한국만의 트로트로 자리 잡는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다. 비록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닌 외부의 동력에 의해 자리를 잡는 방식으로 한국 트로트 역사가 전개됐지만, 분명 후에는 독자적인 한국만의 트로트가 자리를 잡는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방송사가 트로트 오디션에 내건 ‘신개념’은 이런 때 쓰는 개념이다.

어떤 평가가 나오든 최근 모든 음악 장르를 평정한 트로트 음악이다. 요즘 트로트에는 굳이 왜색이니 일본풍이니 하는 낡은 관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트로트 오디션에 참여한 무명가수의 트로트는 국악, 성악, 발라드, 아이돌 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며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하고 있다. 소위 21세기의 ‘신트로트’다. 젊다 못해 어린 가수들이 과거부터 유행했던 노래에 세련된 편곡과 퍼포먼스를 더해 부름으로써 계층,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21년에도 트로트 오디션은 계속된다. 신년 특집에도 트로트 음악 위주의 예능프로그램이 다수 설계되고 있다. 무엇보다 트로트 오디션에 등장한 ‘무명가수’의 활약은 쿠데타 수준이다. 이는 기성 트로트 음악계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지고, 트로트 뉴스타의 등장을 예고한다. 트로트 열기는 ‘뉴트로’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이런 현상은 세대 간 취향을 공유하는 스텍트럼의 확대를 의미한다. 새해 트로트 오디션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