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훈훈한 인품의 배우 김진규의 추억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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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길의 사람들] 훈훈한 인품의 배우 김진규의 추억
  • 입력 : 2020. 12.29(화) 10:37
  • 배우 권병길
김진규 선생은 ‘오발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던 1960년대 대표 배우로 4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 아내 김보미 저서 ‘내 운명의 별 김진규’
배우 김진규(1923~1998)선생이 스크린을 달구던 5~60년대는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다. 선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고 50년 후에도 김진규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음에 놀랐다. 김진규는 전형적인 미남이고 많은 사람은 그의 연기에서 보이는 풍모에 끌려 그를 좋아했다. 가난했던 시절, 김진규란 배우에겐 무언가 하소연하면 잘 이해하고 들어줄 듯한 여유로운 모습이 스크린에 비쳤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의 성공은 최은희, 김진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윽하고 품위가 있는 주인공에 잘 짜인 배우들의 조합이 크게 성공의 기반이 되었다고 믿어진다. 또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김진규, 최무룡 그리고 조연들의 조합이 아니였으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다.

김진규 선생은 해방 전후 혼란기, 일본 ‘우에노 음악학원’에서 공부하고 배우의 길을 들어선다. 배우 생활은 악극에서 시작했다. 그 후 점점 넓어지는 활동 속에 1955년에 이강천 감독에게 발탁되어 ‘피아골’ 출연,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 후 홍성기 감독의 ‘별아 내 가슴에’, ‘청춘극장’, ‘비극은 없다’ 등에 출연했다. 작품들이 공전의 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떨쳤고,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충무로 시대의 중심 배우의 위상을 세우게 된다.

김진규는 최무룡, 신영균과 공연한 배우지만 그들보다 5살 위인 맏형뻘 된다. 놀라운 것은 황정순 선생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영화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아들 역할을 할 정도로 핸섬한 배우였다. 폭넓은 연기자 김진규는 역사물에도 시대극에도 잘 어울리는 전천후 배우가 된다. 그 시대는 신영균의 좀 늦은 데뷔와 남궁원과 신성일이 뒤를 잇는 시기, 한국영화 전성기로 김진규는 최무룡과 충무로의 쌍두마차로 라이벌 시대를 열어 간다.

김진규 선생의 아내도 ‘은막의 여왕’으로 불린 배우 김보애다.
지금도 들려오는 구수한 영화 주제가 ‘추풍령(전범성 감독)’을 들을 때마다 곡괭이를 메고 추풍령 고개 철도 위를 힘없이 걸어가는 김진규라는 배우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뇌하고 겸허하며 진실한 인간상의 김진규를 유현목 감독은 ‘철학이 있는 얼굴’이라고 평했다.

그래서 그런지 늘 곧바른 교훈적 이미지였다. 특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선 사랑방 하숙생으로 들어와 주인집 미망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인물을 연기해 비록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서정성 깃든 따뜻한 한 폭의 삽화 같은 멜로영화를 낳았다. 늘 잔잔한 미소로 여심을 흔드는 김진규는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있어 행복했다”는 시대에는 정치가 케네디가 있었다. 배우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이 있었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라는 영화가 뜨겁게 달구던 시대, 한국 영화의 맏형인 대배우 김승호의 ‘박서방’에서부터 자고 나면 개봉 영화의 울긋불긋한 포스터가 담벼락에 붙고, 유일한 광고지 신문마다 배우들의 얼굴이 부각하던 낭만의 시대였다.

김진규 배우에겐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이 함께했다. 유현목은 ‘오발탄’ 뒤에 재미 작가 김은국의 ‘순교자’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신상옥 감독이 ‘벙어리 삼룡’이란 문제작을 만들었을 당시 김진규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행운이 따라준 배우도 드물었다. 이어 ‘서울로 가는 길(감독 이병일)’, ‘두고 온 산하(감독 이강천)’ 등 반공 멜로물에서, ‘아빠 안녕(감독 최훈)’ 등의 작품으로 그는 인기 정점에 달한다. 그 후 이만희 감독의 ‘귀로’, ‘삼포로 가는 길’에 출연하면서, 정점의 스타 김진규란 배우는 어느덧 옛날 젊은 시절의 추억의 잔영을 남기고 막바지를 달리는 듯했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2020년 경자년도 저물어 가는 즈음에 “왠 50년 전 배우 김진규를 말하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선생이 주연한 400여 편의 작품은 지금도 많은 대중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가 이 시대 대중에게도 존재의 배우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돌아가는 영화의 기술적 오만과 지나친 상품화, 선동적 잔인함을 ‘시대의 반영’이라고 변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럴 때 한 번쯤 과거의 따뜻한 영화를 되새겨봄으로써 세대 간의 존중과 영화의 진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의미도 있음 직하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배우 권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