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뒷담화’의 유쾌함과 ‘야화’의 품격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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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뒷담화’의 유쾌함과 ‘야화’의 품격
  • 입력 : 2021. 01.11(월) 18:09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뒷담화는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여론을 오도하는 등 오남용 사례를 낳기 쉽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 뉴시스
필자는 개인적으로 새해에는 ‘뒷담화’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뒷담화는 일반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듣기 좋게 꾸며 말한 다음, 뒤에서 하는 대화를 이르는 말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를 비롯한 일부 연구자들은 사회적 정보의 가치가 언어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인류가 뒷담화를 하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뒷말’이 많으면 사회는 불신에 휩싸이고, 구성원 개인 사이에 불화를 낳는다. 뒷담화는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이를 토양으로 ‘악의 꽃’이 피어난다. 뒷담화는 대개 ‘험담’이다. 험담이 도를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종종 남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한 험담은 도리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는 결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배후에는 일단 그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상대방의 동조를 통해 이를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있으므로, 지나치게 되면 상대에 대한 시기심과 열등감이 드러날 뿐이다. 이런 점에서 험담이란 평판을 둘러싼 일종의 생존게임과도 같다. 교수신문이 고사에도 없는 ‘아시타비(我是他非)’를 2020년 사자성어로 선택한 것도 뒷담화가 횡횡하는 사회 분위기를 우려해서다.

뒷담화를 한국의 문화적 특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실제로 고려 시대에는 이 뒷담화를 모은 책자까지 나왔다. 대표적 뒷담화 모음집이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다. 특징이라면 험담 모음은 아니다.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담았다. 여기에서 유사란 사초(史草)에 기반하지 않은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말한다. 이에 비해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사초를 근간으로 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지적처럼 뒷담화가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려면 나름의 품격을 지니거나 적어도 유쾌함을 가져야 한다. / 뉴시스

삼국사기는 왕의 명령에 따라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관찬(官撰)사서’ 역사책이지만, 일연의 삼국유사는 개인적으로 쓴 ‘사찬(私撰)사서’다. 삼국유사는 민중 속에 돌아다니는, 어느 지역에서 전해오는, 일연이 판단하고 분석하고, 예측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지리, 역사, 음식, 무예, 의술 등 고서 가운데에도 사찬사서는 많다.

관찬이든, 사찬이든 옛 기록은 소중하다. 문제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들을 ‘정사(正史)’로 착각하게 하고,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 그 착각의 역사가 진실로 둔갑한다는 데 있다. 요즘의 ‘가짜뉴스’가 여론이란 착각의 옷을 입고 ‘진짜뉴스’ 행세를 하는 현상과 다름없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도록 관련 여론을 오도하고 심지어 수치까지 조작하거나 오·남용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뒷담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뒷담화를 모은 책을 ‘야화(野話, 또는 夜話)’라고 한다. 들판에 떠도는 또는 밤중에 수근대는 이야기란 뜻이다. 야화를 사전에서 찾으면 크게 네 가지 설명이 나온다. 한문 표기에 따라 뜻을 달리하는데, 야화(野花)는 ‘들꽃’, 또는 하류사회나 화류계(기생이나 매춘부들의 세계) 미녀를 뜻한다. 야화(野話)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이고, 야화(夜話)는 ‘밤에 모여서 하는 가벼운 이야기 또는 그것을 기록한 책’을 말한다. 그리고 번외 설명으로 나오는 야화(夜花)는 ‘밤의 꽃’인데, 거리의 여인이나, 성(性) 관련 직종의 여성 종사자를 이름한다. 어느 한문 풀이를 들더라도 ‘야화’라는 말에는 음습함이 가득하다. 범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결국 가짜뉴스나 뒷담화도 그렇다.

제목에 ‘야화’를 표기한 책을 국내 대형 서점에 입고된 도서 위주로 검색해 보았다. ‘요로원야화기’, ‘산방야화’ 같은 인문학이나 종교 서적도 있지만, 대부분 ‘野火’, ‘명기들의 야화’. ‘야화 좀비들의 이야기’, ‘밤의 야화’, ‘구미호가 아내 야화’처럼, 그 내용이 쉽게 연상되는 가벼운 이야기책들이다. ‘19금’이 표지에 나붙은 ‘야화’도 많다. 밤의 이야기이든 낮의 이야기이든, 가짜뉴스이든, 진짜뉴스이든, 그것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현실에서 ‘뒷담화’는 인간관계에서 필요악인 셈이다.

우리가 이들 책에서 ‘존재 이유’를 찾는 일은 허망한 노릇이다. 하지만 뒷담화일망정 나름으로 품격을 지니거나, 적어도 유쾌한 이야기이어야 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유쾌하거나, ‘삼국유사’처럼 숨겨진 역사를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이 여전히 음습한 ‘야화’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필요악’을 정상화하려는 자기모순일 뿐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야화에서 발견되는, 여전한 성차별, 인종차별, 남성 중심주의 시각은 불식되어야 한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가장 최근에 서점에 입고된 ‘여의야화(汝矣夜話)’란 장편 소설이 있다. 제목만으로도 서울 여의도에서 일어나는 밤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일 터이니 일단은 대중의 호기심을 얻는 데는 성공한 소설이다. 책을 살펴보니 주인공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아니고 이 지역에서 술을 파는 고급 술집의 여인이다. 정·재계 인물에 밤의 여인이 합류한 통속소설이다.

출판사는 이 책을 “여의도의 어느 모던 바(Morden Bar)라는 작은 사회를 중심으로 인종, 종교, 성에 따른 우리 사회의 차별과 갈등 문제를 되짚어 본 장편 소설이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조선족 동포를 등장시켜 인종차별에 다문화 문제를 거론하고, 신학대학 휴학생인 술집 종업원을 등장시켜, 종교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어서 출판사는 이 책을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비유한다.

출판사의 서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야화는 여전히 음모, 복수, 멸시, 차별, 갈등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포장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질문만 난무하지 대답은 없다. ‘뒷담화’의, ‘가짜뉴스’의 특징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지적처럼 뒷담화가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려면, 야화에 ‘해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름의 품격을 지녀야 하며 적어도 유쾌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