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아빠’ ‘엄마’ 정겨운 호칭에 ‘찬스’를 붙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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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아빠’ ‘엄마’ 정겨운 호칭에 ‘찬스’를 붙이는 사람들
  • 입력 : 2021. 02.24(수) 10:12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사법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저조한 시청을 보였다. ‘있는 자’의 찬스, 이로 인한 사회의 불공정이 만연화되면서 드라마 제목인 ‘날아라 개천용’처럼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시청자들의 생각이다. / SBS
우리나라 사람들 참으로 ‘찬스’ 좋아한다. ‘찬스(Chance)’는 영어다. 우리말로는 ‘어떤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좋은 시기나 경우’를 이름한다. 짧게는 ‘기회’를 말한다. 대개는 긍정적으로 쓰였다. “방학은 성적이 부진했던 과목을 보충하기에 좋은 ‘찬스’다”, “주자 만루에 4번 타자가 타석에 나와 있어 역전을 시킬 절호의 ‘찬스’다”라는 식으로 ‘희망’이 담겨 있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찬스’는 자주 쓰이는 키워드이다. 남보다 앞서 무엇인가 유리한 부분을 확보하는 때에 쓰인다. 일종의 ‘보너스’이거나 ‘베네핏’의 역할을 한다. ‘찬스’를 사용하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남보다 점수를 더 얻기도 한다. ‘찬스’는 이렇듯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찬스’가 ‘있는 자’의 전유물로 바뀌었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찬스’는 동경의 대상이 되고, 한쪽에서는 시기 질투 역겨움의 표상이 되었다. ‘아빠찬스’, ‘엄마찬스’가 일반화되면서부터다.

‘아빠 엄마’란 정겨운 호칭에 ‘찬스’가 붙으면서, ‘아빠 엄마’조차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 그들만의 호칭으로 변화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대물림으로 인한 공정의 훼손이다. 같은 출발선에서 뛰게 해야 할 터인데, 한참 앞에 세워서 뛰게 하니 언제나 1등은 그들의 차지이다. 공정하지 않다.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 경제계의 거물들에게서 ‘찬스’가 쓰이고, 그 결과가 불공정하게 나타나니 자연스럽게 이 사회는 불공정 사회, 비뚤어진 운동장이 되고 만다. 교통사고를 내도, 마약류 사범이어도, 이 ‘찬스’만 쓰면, 만사형통이다.

아빠 엄마는 사건 당시에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 크다”며 머리를 조아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현안에서 지적질도 먼저하고, 호통 소리도 거칠고 높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꼴이다. ‘찬스’ 사용에 성공한 권력자의 자식들이 기세등등할 수밖에 없다.

대물림에 따른 찬스의 비정상은 이미 14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도 보여준다. 이는 정치권과 경제계, 예술계, 스포츠계 등 사회 곳곳으로 확산돼 논란이 되고 있다. / SBS

지도자들이 그러하니 “개천에서 용 나다”는 그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할머니 말씀이 되고 말았다. 지난달 종영된 SBS 주말극 ‘날아라 개천용’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대변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드라마로 끝났다. 정우성 권상우 같은 스타파워를 등장시켰어도 시청률은 6%대에 머물렀다. 시청자가 “현실적이지 않다”며 외면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는 절대로 용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게 시청자들의 생각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용 타령’이 요란해진다. ‘잠룡’ 운운하며 각 정당의 용들이 난립하여 어지럽게 공방전을 벌인다. 대학입시 때도 학부모 사이에서 용 타령으로 시끌벅적하다. “개천에서 용도 나오고 잉어도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그래야 ‘살맛 나는 세상’일 수 있다며 대학은 외치지만, 아빠 엄마 찬스를 쓸 수 있는 그 개천은 서울 강남 대치동 일대에만 흐른다.

‘날아라 개천용’ 훨씬 전에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의 결론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나갔다”다. 14년 전의 드라마였다.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기로 작심한 강북 엄마는 억대 빚을 져가며 강남으로 이사를 한다. 돈 없이는 명문대 갈 생각조차 못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모의 경쟁력이 자식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신입생 특성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월 소득이 높을수록 진학률이 높다. 서울 강남권 학생들의 진학률도 월등히 높다. 이 보고서는 “부모 학력과 직업 등 신입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으며, 스스로 상류층이라고 느끼는 학생 비율도 늘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법대와 의대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아빠 엄마 찬스가 어디에서, 그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보고서다.

정치 경제계 거물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찬스’는 최근 들어 체육계와 예술계, 연예계로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대물림이 아니라 공정의 훼손이 일어나고 있고, 막을 방도가 아예 없고 의지도 없다는 데에 있다.

예술계의 대물림에 의한 공정의 훼손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콩쿠르나 예술기관 취업에서 합격자의 아빠 엄마 찬스는 최고의 실력으로 통한다. 심사의원들이 죄다 아빠 친구, 엄마 친구들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심사제척사유가 있음에도 감사원조차 눈을 감는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필자가 만난 ‘찬스’를 쓸 수 없었던 몇몇 예술가들은 실제 겪은 사례를 증언한다. 지금 전국 시립오케스트라에 음악가의 2세들로서 상임 지휘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학력도 이상하고 경력도 이상한데 상임지휘자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심사한 심사위원은 아빠 학교 동료 교수이거나 아빠의 제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합격권에 들었던 한 면접자는 심사위원이 자신을 화장실로 불러 “이번엔 누구로 내정되어 있으니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라”라며 고맙게(?) 알려주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당사자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여자프로배구에서도 ‘찬스’가 종종 사용된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유명 선수의 부모가 연습장에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참견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반발하고, 팀의 분위기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빠 엄마 찬스가 일상이 되고 보니 대통령까지 그 ‘찬스’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현실이다. 문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가 아들 특혜진료를 주장한 곽상도 국회의원을 고소한 사건이다. 대통령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빠 찬스’ 논란에 오르는 이 사회는 정녕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사회’인가. 찬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