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코프] 여전히 노동을 희생시키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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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코프] 여전히 노동을 희생시키는 사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120시간’ 발언, 무엇이 문제인가?
  • 입력 : 2021. 07.23(금) 15:52
  • 뉴스코프 김윤겸 기자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이른바 ‘120시간’ 발언으로 끊이지 않는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여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한 발언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지난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당초 현 정부의 주 52시간제를 비판하기 위해 꺼낸 것이 주요 취지다. 또 일할 때는 바짝 일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발언 직후 5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발언의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현실과는 크게 벗어난 방향성이 문제가 된다. 어떤 기업 어느 직장도 아무리 엄청난 노동 강도로 근무해 성과 또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도 그에 따른 보상적 차원의 휴식을 주는 곳은 없다. ‘이 정도 시켜도 성공했으니 더 일을 빡빡하게 시켜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경영자라면 있을 법하다.

일부에서는 이번 발언이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윤 전 총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무리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부각되는 요즘이라도 일할 때 빡빡하게 일하고 놀 때 놀 수 있는 기업이란 적어도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상식을 그는 모른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발언이 문제시 되는 것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그의 시각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2137시간의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이는 OECD 평균인 연간 1726시간과 비교해 241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OECD 37개국 가운데 행복지수는 밑에서 세 번째인 35위에 불과하다. 이들 통계는 노동을 위해 삶의 대부분이 희생되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각종 사회문제는 이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무관치 않다. 장시간 노동으로 가정과 자녀를 제대로 돌볼 수 없고 심각한 출산율 저하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노동에 대한 압박으로 여타 국가보다 높은 음주·흡연율과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암 발병률도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드문 빈민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성과를 남긴 계기는 눈부신 경제성장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제성장은 살인적인 노동시간, 즉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UN이 인정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세계 어느 선진국도 우리나라처럼 일하지 않는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비율은 줄어들고 지식기반의 제4차 산업으로 지형이 바뀌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일을 얼마나 하는가가 아닌 일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유력한 대선 주자의 뒤떨어지는 노동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의 구시대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뉴스코프 김윤겸 기자 paperguy@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