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일본의 ‘역사 세탁’… 유네스코 경고도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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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일본의 ‘역사 세탁’… 유네스코 경고도 나 몰라라
  • 입력 : 2021. 07.30(금) 15:45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징용과 인권 침해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 뉴시스
세탁(洗濯)이란 말은 본래 ‘때 묻은 옷이나 가죽 따위를 물이나 약품 따위에 빠는 일’을 가리키는 ‘긍정’의 의미를 지닌다. 모든 낱말은 어떤 수식어와 같이 쓰일 때 반드시 ‘긍정’의 의미만 지니지 않는다. ‘세탁’도 ‘돈세탁’, ‘신분 세탁’처럼 ‘부정’의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의 ‘세탁’에는 ‘은폐’ 또는 ‘조작’의 의미가 강하다.

부정적 ‘세탁’ 가운데 가장 나쁜 세탁은 이웃 나라 일본이 보여주는 ‘역사 세탁’이다. 그들은 겉 보이기는 예의 바르고, 상호 존중하고, 질서 정연한 듯한데, ‘역사 세탁’과 관련해서는 파렴치 수준이다. ‘독도’를 ‘죽도’로 기록하고, 위안부·정신대 할머니들의 참여가 자발적이었다고 세탁하더니,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이었던 ‘군함도’는 근대 산업 시설 현장으로 둔갑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소개됐던 ‘군함도(2017, 류승완 감독)’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에 있는 하시마섬(端島)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섬 모양이 먼 곳에서 보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부른다. 무인도였던 이 섬은 석탄 채취를 위해 개발됐고, 일제 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강제노동에 동원돼 고초를 겪은 현장이다.

패전 후에도 이 섬에서의 석탄 채취는 계속되었으나, 연료를 석유로 바꾸는 ‘에너지 혁명’으로 1974년 폐광됐다. 폐광 이후 군함도 출입은 오랫동안 금지됐다가 일본 정부는 ‘귀중한 해저탄광 유적’, ‘일본 근대화의 상징’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며 2009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군함도’를 포함한,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규슈 야무구치 지역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했다. 이 등록은 2015년 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세계유산 등재로 최종 결정됐다. 일본의 ‘역사 세탁’이다. 수백 명에 이르는 조선인 사망자에 대한 유감 표명 없이 이뤄진 결정이다.

일본은 앞서 군함도 등이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증거물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유산 등재 기간을 1850~1910년으로 한정해 강제징용에 대한 별도의 역사적 기술 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했다. 1940년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제외함으로써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덮으려 한 꼼수였다.

일제 강점기 시대 한국인의 강제노역 현장이었던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 영화 스틸컷

우리 정부는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이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하는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제무대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 노역 사실이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당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군함도 등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 총리인 당시 스가 관방장관도 2015년 7월 6일 기자회견에서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졌을 때 이들 시설의 조선인 동원 문제는 강제징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은 그런 나라다. 피해 당사국은 물론 국제기구와의 약속조차 자국에 불리하면, 어제 약속을 오늘 뒤집는 ‘역사 세탁’에 관한 한 세계 일등 국가이다. 오죽하면 일본에 늘 우호적 태도를 보였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을까. 위원회는 지난 22일 회의에서 “6년 전의 약속을 지킬 것”을 일본에 요구했다.

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군함도 관련 설명에서 강제 동원된 한국인의 피해 사실이 빠져 있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역시 미흡하다”는 내용이 담긴 시정 공식 요구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강력한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국제사회가 일본의 ‘역사 세탁’을 엄중히 경고한 내용이다.

일본은 지난해 3월 도쿄 신주쿠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관했다. 애초 이 센터는 군함도 등 일본의 산업시설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세계유산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이 제대로 담겨 있는가, 그 여부를 둘러싸고 주목받았다. 이 센터는 개관 3개월 후인 6월부터 지극히 제한된 수준의 일반 공개가 이뤄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센터의 어느 공간에도 세계유산위원회가 권고한 시정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은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에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고, 자국의 산업 발전상만을 조명하는 공간일 뿐이었다”고 밝혔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둘러본 국내 언론사의 한 특파원은 “현재도 이 센터의 전시 공간은 일본의 산업화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강제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가 주로 전시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본 노동자와 한반도 등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들이 똑같이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전시됐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의 가토 고코(加藤康子) 센터장은 나아가 “(군함도에서) 강제 노동은 없었다”라거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발언으로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결국 강제 동원된 식민지 출신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반성해 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국제사회에 스스로 한 약속까지 파기하며 ‘역사 세탁’을 끈질기게 펼치고 있는 일본은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네스코의 이례적인 비판 결정문 채택 이후에도 일본 정부로부터 반성이나 시정에 관한 언급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유력 미디어인 아사히신문은 7월 27일자 ‘산업혁명 유산 약속을 지키고 전시를 수정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유네스코의 결정문 채택과 관련해 “세계유산을 둘러싼 일본의 대응에 국제기구가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면서 “대외적 신뢰에 관한 사태인 만큼 일본 정부는 조속히 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들 스스로 ‘역사 세탁’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일본 관계 당국의 변화를 지켜볼 일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