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상대적 박탈감’ 아들에게, “아빠가 미안하다”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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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상대적 박탈감’ 아들에게, “아빠가 미안하다”
  • 입력 : 2021. 10.05(화) 10:06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경찰이 래퍼로 활동 중인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무면허 상태에서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등이다. / 뉴시스
MZ세대의 SNS 공간에서 요즘 가장 많이 보는 표현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권리나 자격 등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다.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대상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관한 표현은 과격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테러라도 벌일 기세다. 방관만 하고 있다가는 금세 사달이 날 분위기다. 무엇이 그들을 자극하는 것일까. 부자이거나 권력자 집안의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성장의 과실을 소수의 사람만 누린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에 발생한 두 가지 사례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이유 있음’을 증명한다. 모두 ‘국민의 공복’이라는,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의원의 22살 난 철없는 아들은 무면허에 그것도 집행유예 기간에 술을 마시고 남들이 평생 가지고 싶어 하는 벤츠를 몰고 사고를 냈는데, 단속 경찰에게 대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바로 풀려났다.

만약 없는 집안의 아들이 그랬다면 풀어 주었을까? 아니다. 100% 구속이고 높은 형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누구누구의 사회적 차별이 아닌 법 테두리 안에서 만인이 공평해야 할 잣대를 무시한 처사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들의 집안은 기득권의 카르텔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즐기며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고 있는 적폐 세력이다.

그는 꽤 알려진 연예인이다. 그것도 가장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랩’ 가수이다. 그런 래퍼의 행위가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었으면, 팬클럽은 물론 래퍼의 세계에서 그의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을까 싶다. “봐주기 그만하고 이제 구속 수사 엄벌하라”, “그의 아버지의 국회의원직 박탈을 원합니다” 등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그의 계속되는 범죄행위는 국회의원인 아버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일반인이나 연예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족과 지인도 조심하는데, 살인 행위나 다름없는 음주운전을 하고 반성하지 않는 그의 자신감은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권력에서 기인했다. 그 권력을 이대로 놔두는 것은 범죄자에게 범죄의 원인을 제공해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의원의 아들은 20대 중반, 한 자산 관리 회사에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5년여 근무하다 퇴직했는데 퇴직금으로 무려 5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MZ세대 SNS에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맞느냐”라는 글이 쏟아졌다. 그 회사는 “성과급이고, 산재보상 차원에서 지급했다”는데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는 설명이다.

이른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으로 50억원을 수령한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이 일자 해당 국회의원은 당에서 탈당한데 이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 JTBC 방송화면 캡처

그 회사는 자산 관리회사로 부동산을 개발한 기업인데 무슨 산재 운운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산재(산업재해·産業災害)는 노동자가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광의로는 업무 중뿐만 아니라 통근 중 재해도 포함한다. 하지만 협의에는 부상(그로 인해 장애·사망)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질병(또는 질병으로 인한 장애·사망)에 따른 산업재해 보상은 잘 이뤄지지 않아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큰 불만으로 남은 상태다. 그런데 그 회사는 알아서 먼저 거액의 산재 보상을 했다는 이야기다.

한 노무 관리자는 “그동안 구로공단에서, 안산 산업단지에서, 구미 전자공단에서, 포항광양제철에서,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다 팔다리가 없어지고 기계에 짓눌려 죽은 진짜 산업전사들에게도 그 같은 보상이 이뤄진 적은 없다”면서 “‘상대적 박탈감’보다는 ‘산재’로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세상을 떠난 진짜 산업전사와 그 가족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使)측에 의한 50억 보상’은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 경영전문가는 “그 회사 정도의 기업에서 월 급여 250여만원을 받고 퇴직한다면 퇴직 급여는 2000~3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정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지나쳤다고 지적한다. SNS에서 한 청년은 “알바 수입으로 혹시나 해서 재미 삼아 로또 복권을 사는데, 이번 주 1등 당첨금이 17억원이더라. 그런데 그 친구는 ‘로또신(神)의 아들’이라도 되는가 보다”라며 이보다 더한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까 싶다고 허탈해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같은 자리에서 번개를 두 번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고 한다. 50억원이면 같은 자리에서 번개를 6번 맞고도 살아나야 하는데, 그 기적 같은 일을 해냈으니 그는 ‘로또신’의 아들임이 분명하다는 비아냥이다. 신과 동급에 이른 국회의원의 아들들이 우리 청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 셈이다.

22살에 벤츠를 타고 명품 옷을 입고 강남에서 술을 마시고 공권력에 도전한 청년을, 20대 중반에 입사해 5년여 근무하고 퇴직하면서 50억원을 받은 청년을 평범한 또래 청년이 어떻게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사달은 ‘공정’과 ‘정의’가 상실된 이 사회의 탓이다. 권력을 지닌 그 부모들의 책임도 자유로울 수 없다.

초등학생도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된다.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까지 지켜주는 게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다. 자기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평한 경쟁을 통해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예를 들자면 가난한 집 아이도 좋은 학교에 시험을 칠 기회(의 평등)는 있다. 하지만 공부할 시간이나 경제력이 없다. 참말로 좋은 나라는 부자의 자식에게나, 빈자의 자식에게나 똑같은 조건(의 평등)을 마련해주고 경쟁시키는 것이다. 부잣집 아들은 몇 천만원 들여 개인과외도 받고 어학연수도 가는데, 가난한 집 아들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스펙 쌓을 시간도 없는 우리나라다.

가난한 집 아이는 출발선부터 뒤에 있는데, 이것이 무슨 공정한 게임인가? 불공정 게임이 허용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평상의 상태도 이런데, 정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일확천금을 손에 넣는 모습을 잇달아 보게 된다면, 보통의 청년들은 이 세상의 어떤 가치를 존중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빈부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적인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심리학자의 지적에 귀 기울일 때이다. 그리고 “옛 성현의 가르침은 언제나 옳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부모는 활이고 자식은 화살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청년 약자의 부모들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아빠가 XXX가 아니라 미안해”, “XXXX에 취직 못 시켜줘서 미안해” 등의 반응을 보인다. 이 시대 불쌍한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가진 것 없고, 미래의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그래서 정신까지 피폐해진 아버지들이다.

우리는 이 비겁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이 소리 내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놓은 당부의 말에 귀 기울이자. “아들아,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처럼 누군가에게 세뇌되어 멍청하게 살지 마라. BTS의 유엔 연설처럼 자신을 찾고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아빠가 미안하다”라는 피눈물 담긴 외침을….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